대한민국이 합계출산율 0명대 시대에 진입했다.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한 ‘출산율 1명대 미만’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셈이다. ‘저출산 쇼크’라 할 만하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18년 인구동향조사 출생ㆍ사망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출생통계 작성(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한명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출산율 하락 속도도 빠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71년 4.54명을 정점으로 1987년 1.53명까지 떨어졌다. 1990년대 초반에는 1.7명 수준으로 잠시 늘었지만 이후 다시 빠르게 줄기 시작해 2017년 1.05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바 있다.
보통 인구유지에 필요한 합계출산율을 2.1명으로 본다. 하지만 한국은 이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가운데서는 평균(1.68명)은커녕 초(超)저출산 기준(1.3명)에도 못 미치는 압도적인 꼴찌다.
‘출산율 0명대’는 1992년 옛 소련 해체, 1990년 독일 통일 등 체제 붕괴ㆍ급변 때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카오ㆍ싱가포르 등이 1명 미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들은 한국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가 힘든 도시 국가다. 사실상 한국이 외부 충격이 없었는데 합계출산율 1명 선이 무너지는 세계 유일 국가가 되는 것이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출산이 많이 이뤄지는 연령대가 30대 초반인데 이 인구가 2018년 기준 전년 대비 5% 감소했고, 혼인 건수도 지난해까지 7년 연속 감소하고 있어 출생아 수도 함께 줄었다"며 "이런 출산율로는 앞으로 인구감소 속도가 굉장히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료: 통계청 지난해 출생아 수는 32만6900 명으로 전년 대비 3만900명(-8.6%)이 줄었다. 이에 따라 조(粗)출생률(인구 100명당 출생아 수)은 6.4명으로 0.6명 감소했다. 구체적으로 해당 연령 여성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따지는 모(母)의 연령별 출생율은 40대를 모든 연령에서 감소했다. 20대 후반이 47.9명에서 41.0명으로 가장 크게 줄었다. 주 출산 연령인 30대 초반에서도 97.7명에서 91.4명으로 낮아졌다.
20대 후반 출산율이 30대 후반 출산율보다 낮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정된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풍조로 만혼(晩婚)이 일반화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평균 출산연령은 32.8세로 전년보다 0.2세 상승했다. 첫째 아이는 31.9세, 둘째 아이 33.6세, 셋째 아이 35.1세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해 사망자 수도 사망원인통계 작성(1983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29만 8900명으로 전년 대비 1만3400 명(4.7%) 증가했다. 이에 출생에서 사망을 뺀 인구 자연증가 규모도 2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4만4000명(-61.3%)이나 감소했다. 1970년 이래 최저치다. 한국의 고령화 진행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한국의 인구 감소 시점도 빨라질 전망이다. 통계청은 2016년 장래인구 추계에서 한국의 총인구 감소 시점을 출산율 저위 추계(최소 인구 가정) 기준으로 2028년이 될 것으로 공표했었다. 하지만 최근 출산율이 예상보다 빠르게 떨어지면서 총인구 감소 시점이 이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은 장래인구 예측 모형을 개선해 이런 내용의 장래인구 특별추계 결과를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이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저출산 고령화가 예측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한국의 총인구 감소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며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일자리ㆍ복지ㆍ연금ㆍ교육ㆍ주택 등 주요정책에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자료: 통계청 이런 저출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20~30대 초반 인구 자체가 줄어들었다. 여기에 청년들의 혼인 연령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취업이 되지 않고, 주거비 부담 등으로 결혼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다. 결혼을 해도 출산을 미루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휴직하기가 쉽지 않고, 양육비ㆍ교육비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쉽게 말해 사회ㆍ경제적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인구 감소가 우리 경제ㆍ사회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고령화에 따른 복지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경제 성장과 내수 및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인구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잠재성장률이 2000~2015년 연평균 3.9%에서 2016~2025년에는 1.9%, 2026~2035년에는 0.4%까지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노동의 성장기여도가 1980년대 연평균 2.0%에서 2010년대에는 0.6%포인트로 떨어지더니, 2020년대에 -0.7%포인트로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2030년대에는 -1.0%포인트로 확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해법을 찾긴 쉽지 않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착화된 결혼 기피 현상을 깨는 게 중요한데 일자리 확대, 교육제도 개선, 일하는 여성에 대한 배려, 육아 혜택 확대 등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 바뀌어야 한다”며 “범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폐쇄적인 일본도 노동력 확충을 위해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면서 “한국도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자료: 통계청 한편 시도별 합계출산율은 세종(1.57명)ㆍ전남(1.24명)ㆍ제주(1.22명) 순으로 높았고, 서울(0.76명)ㆍ부산(0.90명) 순으로 낮았다. 17개 시도 모두 합계출산율이 전년보다 감소했다. 대전(-11.3%)ㆍ울산(-10.2%)ㆍ전북(-9.3%)의 감소 폭이 컸다.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의미하는 출생성비는 105.4명으로 전년보다 0.9명 감소했다. 첫째와 둘째, 셋째의 출생성비 모두 줄었다. 셋째 이후까지 출생성비가 모두 정상범위(103~107명) 수준이라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아들을 보기 위해 셋째·넷째를 낳던 남아선호 사상이 이젠 거의 사라졌다는 얘기다.
자료: 통계청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