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전통시장 내 커피전문점 '전홍태커피'. 잔잔한 세미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앞치마를 두른 바리스타 전홍태(58) 씨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커피 내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여유가 있고 행복해 보인다. 입가엔 엷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커피향이 날 것 같다. 앞치마가 참 잘 어울리는 중년 남자다.
능숙한 솜씨로 커피를 내리는 전 씨는 불과 4년 전까지는 공무원 신분이었다. 29년 공직생활로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그만두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카페를 차리면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 것이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남들보다 조금 일찍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전 씨는 "30년쯤 공직생활을 하니 매너리즘에 빠진 것도 있고 일에 대한 의욕도 없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퇴직 이후에 하면 늦을 것 같아 명예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아내는 적극 찬성했다. 잘 할 것이란 격려도 했다. 뒷바라지가 필요한 두 딸도 "아빠가 하고 싶은 것 하세요. 더 늦기 전에 아빠의 길을 가세요"라고 했다.
전 씨는 처음에는 공직에서 경험한 축산(농장)을 하려 했다. 그러나 농장은 혼자 하기엔 젊지도 않아 힘이 부칠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마침 아내가 하고 있는 북카페에서 커피 내리는 일을 돕다보니 적성에 맞았다. 대구를 오가며 커피를 배웠다. 그는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처럼 재미있고 즐겁게, 행복하게 공부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소자본으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 경쟁이 심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재미있고 즐겁게 하니 일도 잘 풀렸다고 했다.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지난해에는 몇 년간 시음과 연구과정을 거쳐 개발한 '가야금의 향기'라는 콜드브루 커피도 개발했다. 또 커피교육(바리스타 자격증반)과 함께 장날(4, 9일)에는 커피를 볶고 내리는 체험장을 열기도 한다.
전 씨는 늦은 아침에 문 열고 청소를 끝낸 뒤 음악을 들으며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일을 생각한다. 무엇보다 여유가 있어 좋다고 했다. 이 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출근길이 이렇게 가볍고 즐거울 수 있다니. 날이 좋아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커피를 내리고 커피로 힐링 한다"고 했다.
전 씨는 커피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서글서글한 인상 좋은 마스크에 웃으면 눈가의 주름이 펴지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게 한다. "서비스업과 맞는 모양"이라며 싱긋 웃는다. 전 씨는 "남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고, 편하고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공직에서 퇴직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손해 보지 않으면 잘했다 할 정도로 그리 많은 수익을 내는 구조는 아니지만, 눈을 뜨면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그의 답변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하기보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게 중요해요."[출처: 대구매일신문/19.06.17]